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벤저민 프랭클린 (문단 편집) === 발명가 프랭클린 === 그는 한 번도 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물론 이 시대에는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역학과 천문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 주제는 아마추어가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이었다.] 연구욕과 탐구심이 왕성해 미국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1737년 필라델피아 우체국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기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 전기를 알리는 장본인이 되었다. 1748년에는 이미 성숙기에 들어선 출판 사업을 아예 전문 경영인을 고용해 맡기고, 자신은 다른 사업이나 과학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초점 렌즈, 소방차 등을 발명했으며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 목재를 연료로 벽난로를 사용했던 것 때문에 운송비용과 목재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해서 기존의 벽난로보다 열효율이 좋고 안전한 펜실베이니아 화로를 발명했다. 그 이후 펜실베이니아 화로의 문제점을 개선한 개방형 난로를 발명했는데, 개방형 난로는 지금도 '프랭클린 난로'라는 이름으로 땔감이 아닌 가스 등을 사용해 쓰이고 있다. [[파일:벤저민 프랭클린 연 실험.jpg]] 이렇게 여유롭게 연구를 이어오다 1752년 6월에는 비 오는 벌판에서 연을 날려가며 실험한 끝에 그 유명한 [[피뢰침]]을 발명해냈다. 연줄 끝에 금속제 열쇠를 묶고 그 열쇠를 관찰하여 번개가 전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 참고로 실험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인 게 프랭클린은 이 실험을 하다가 벼락을 맞을 뻔했다. 아들과 함께 실험을 하였는데, 맨발인 아들의 손을 잡고 있어서 감전되지 않은 것.[* 실제로 러시아의 과학자 리히만과 다른 프랑스 과학자는 동일한 실험을 하다가 벼락에 맞아 즉사했다.] 방귀 냄새가 지독하다고 방귀 냄새를 맡기 좋게 만드는 실험까지 했다! 아무래도 자기 혼자서 연구하는 건 어렵다고 여겨서인지 상금까지 걸고 방귀 냄새 좋게 만들기 공모전까지 열었다. 물론 상금의 주인공은 없었다. 화재 사고에 대해 관심도 많아서 필라델피아 소방회사라는 미국 최초의 소방서를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외국의 경우|세계 최초]]의 소방차도 만들었다. 피뢰침도 낙뢰로 인한 화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요도용 [[카테터]] 발명자이기도 하며 물리학, 기상학, 해양학, 경제학 등에도 어느 정도의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음악에도 능해 하프, 바이올린, 기타를 다룰 줄 알았고 [[글라스하모니카]]를 발명하기도 했다. [[체스]]를 무척 좋아했다. 1775년에는 미국 우체국의 초대 [[미국우정공사|우정공사]] 총재를 지냈으며, 이때 그가 만든 시스템은 아직도 사용 중이다. 단순히 발명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의 대인적인 면모가 돋보이는데 그는 펜실베이니아 화로나 피뢰침 같은 일반인들의 일상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만한 물건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했다. 물론 뒤끝 쩌는 영국인들은 왕의 반역자라 칭하면서 그가 발명한 끝이 뾰족한 표준 피뢰침 대신 끝이 둥근 피뢰침을 사용했지만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지 영국에서도 결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받아주고 메달까지 주는 등 사실상 업적을 인정해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